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구체적으로 저의 성품에 대해서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결혼하자마나 아버지는 도박과 음란으로 집에 들어오시지 않으셨고 결국은 어머니는 아빠가 돌봐주지 않아 할머니 집으로 저와 형을 데리고 주위에 만류에도 불구라고 들어가셨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아빠는 할머니와는 내통 하면서 10살 연하인 술집여자와 딴 살림을 차렸다고 했습니다 할머니의 심한 구박을 다 견뎌내고 이혼만은 절대 안한다고 하셧는데 아빠와 할머니의 이혼요구를 견디지 못하시고 제가 5살 때 이혼을 하셨습니다.
단돈 천만원과 쌀 20kg가 전부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건물 옥상 단칸방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저와 형을 굶길까봐 36이라는 나이로 오토바이를 배우셔서 우유배달을 하셨고 쉬는 날이시면 저와 형을 오토바이에 태워서 마트도 가고... 그렇게 2년을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그때 그 2년이 제일 행복했었다고 말씀 하시곤 했습니다.
먼저 다니던 교회에서 목사님 어머니의 강력한 재혼 권유로 아빠와 데이트를 하셨고 두번째 누나의 저와 형을 동반한 데이트를 권유하셨고 어머니는 누나와 첫만남이었는데 누나가 엄마라고 불러도 되냐는 질문에 재혼을 결정하셨고 그렇게 지금까지 다섯식구로 9년을 살고 있습니다.
집한칸 없는 셋방으로 시작했는데 아버지의 주식으로 엄청난 빚을 지고 하루가 멀다고 내 자식 네 자식 하시며 항상 다투시곤 했습니다. 아빠와 누나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늘 힘들게 사시는 엄마가 불쌍했습니다.
어린 저는 아빠랑 왜 사냐고 우리끼리 살면 더 좋겠다고 우리끼리 살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어머니는 너희들한테 두번 이혼한엄마로 남고 싶지 않다고 더 이상 호적을 더럽히고 싶지 않다고 참고 또 참으시던 중에 3년 전 CTS를 통해서 결혼은 나무 십자가 이고 재혼은 쇠십자가라며 아프리카 선교보다 더 힘든게 재혼이라는 김양재 목사님의 말씀을 듣다가 우리들교회가면 또 이혼안하고 살 수 있겠다 싶으셔서 바로 우리들교회 등록을 하셨습니다. 저는 예전 다니던 교회가 좋아 우리들교회에 안나가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끌려 가게 된 저는 노래를 듣거나 자는 걸로 허무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다반사 였었습니다.
그렇게 중등부에 올라가게 되고 중등부 수련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친한친구도 없고 혼자 멍하게 앉아있다가 주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어깨동무를 하며 뛰고 서로 부둥켜 안고 기도해주는 모습에 자연스럽게 제 마음이 열린 것 같습니다. 그 동시에 친구들도 많이 생겼고 교회다니는게 즐거워졌고 항상 수련회가 기다려지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엄마가 큐티하자하시면 아직 중학생인데 차츰 하겠지 중학생이 큐티하는 애들이 얼마나 있겠냐고 그러면서 등 돌리곤 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되었다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친할아버지가 작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왜 무슨 이유로 연락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점도 있습니다.
어머니는 친아빠도 할머니도 용서가 됐다고 하셨는데 저는 아직 아빠가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용서하기 정말 힘들거 같습니다.
저희 가족을 180˚ 바꿔주신 우리들교회 선생님들과 김양재 목사님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