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7:21-37
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27 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서 이리 저리 쫓겨가다가 자정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28 물을 재어 보니 스무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29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내리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니라
30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 놓거늘
31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32 이에 군인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33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34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35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36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37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
♱ 이제는 안심하라 ♱
하나님 아버지, 광풍 속에서 이제는 안심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이제는 안심하려면 첫째, 미리 들은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21절에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음에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고 해요. 여러 날 동안 심한 풍랑이 계속되니 모두 깊은 절망으로 먹지를 못합니다. 그러니 그전에는 듣지도 않던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이죠. 바울이 가운데 서서 큰 소리로 말합니다. 절망과 허기에 사로잡히는 한계 상황이 되니 듣게 되고 또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세워주는 사람이 없어도 한계 상황에서는 저절로 예수 믿는 내가 리더가 됩니다. 망하고 나니까 내 옆에 바울이 있었다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축복이고 또한 권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축복이에요.
권할 때 안 들어서 광풍이 왔다면 광풍을 만난 지금은 이제 말씀으로 위로해 주어야 할 때입니다. 22절에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고 해요. 바울이 왜 이렇게 자신 있게 안심하라고 말할 수 있나요? 바로 23절에 나오지요. 하나님이 미리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23절에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라고 해요. 곁에 말씀이 있기에, 그 말씀이 나에게 미리 말씀해 주셨기에 나도 안심할 수 있고 내 옆에 있는 지체들을 안심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안심하라는 단어는 ‘휴 이제 살았네’ 하는 것처럼 ‘안도의 숨, 기쁨의 숨을 내쉰다’라는 뜻입니다. 믿는 우리는 들은 광풍 가운데 있는 이들을 찾아가 깨달은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표류하는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의 가장 큰 적은 절망이에요. 이들을 찾아가 말씀으로 위로하는 것이 곧 우리의 사명입니다.
바울의 사명은 하나님의 사자가 ‘안심하라’는 말씀과 함께 알려주셨는데 24절에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입니다. 사명 때문에 왔다가 사명 때문에 가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인생이지요. 과거에는 들은 말씀이 있기에 안심하고 현재는 사명을 감당해야 하므로 안심합니다. 구원의 근거가 하나님께 있기에 우리는 안심할 수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 광풍 속에서 말씀이 들리나요? 들은 말씀 때문에 안심하나요? 내 옆에는 안심하라며 말씀으로 간증해주는 지체와 공동체가 있나요?
이제 안심하려면 둘째, 묻고 기도해야 합니다.
27절에 ‘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서 이리 저리 쫓겨가다가 자정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라고 해요. 유라굴로 광풍의 기세는 칠흑 같은 어둠만 계속되는 죽음의 광풍으로 여기서 자정은 ‘깊은 한밤중’이라는 뜻입니다. 솟구치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보내는 기다림의 시간은 대화도 없이 식사할 겨를도 없이 그렇게 침 삼킬 틈도 없이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죽음의 시간입니다. 이것은 내 힘으로 구원을 이루겠다는 내 교만한 생각이 죽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이에요. 노를 저을 수도 없고 닻을 내릴 수도 없고 어디로 가는지 방향조차 알 수 없는 시간을 통해서 철저히 내 자아가 죽어야 ‘내가 죄인이다’하고 고백할 수 있어요. 내 등 바로 뒤에서 휘몰아치는 광풍 속에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열나흘이라는 시간은 곧 성령의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이 광풍 가운데서 우리가 할 일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이를 악물고 참는 것이 아니라 이 광풍의 상황을 품는 것이에요.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죽어야 내 죄가 보이고 내 죄가 보여야 광풍 사건에서 또 다른 영적 자녀를 낳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이렇게 영적 자녀를 낳기까지 기다리십니다.
28절에 ‘물을 재어 보니 스무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고 해요. 열나흘째 되도록 광풍 가운데 무려 800km를 휩쓸려 아드리아 바다까지 왔어요. 지금이 내 인생의 가장 어두운 한밤중 같은데 그 한밤중에 오히려 육지가 가까워진 것이죠. 아드리아 바다는 바로 이탈리아 남부 앞바다, 즉 로마 앞바다입니다. 바울은 믿음이 있었던 반면 다른 사람들은 이리저리 쫓겨 다녔지요. 하지만 바울 옆에서 계속 말씀으로 양육을 받으니 쫓겨만 다닌 줄 알았는데 목적지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어요.
노련한 사공들은 바람에 느껴지는 습도와 파도 소리를 듣고 바람의 냄새를 통해서 드디어 육지가 가까워진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물속 깊이를 재보았습니다. 이때 배에 탄 사람들은 26절에서 바울이 ‘한 섬에 걸리리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을 것 같아요. 듣든 안 듣든 말씀을 전해 놓으니 사건이 왔을 때 기억나는 말씀이 있는 것이죠. 그런데 한밤중을 지나고 구원의 소식이 들리는 바로 이 중요한 순간 급하게 가면 안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먼저 측량해야 해요. 사공들은 암초를 피하고자 닻을 내리고 날이 새기를 고대합니다. ‘고대한다’의 사전적 의미는 ‘간절히 기다린다’이고 원어적 의미는 ‘기도하다’입니다. 즉 무언가 된 것 같은 이때 묻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육지가 보인다고 구원이 코앞에 왔다고 서두르면 안 돼요. 기다림의 끝이 온 것 같은 이때는 더더욱 멈추어야 합니다. 그냥 멈추는 것이 아니라 물길을 재고 4개의 닻을 내리고 이게 맞는지 돌다리를 두드리듯 묻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죠. 적용 질문이에요.
♱ 기억나는 말씀으로 잘 물으며 기다리나요? 뭔가 해결될 것 같아 급하게 행동하진 않나요? 물어볼 공동체와 믿음의 지체들이 있나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나요?
믿지 않으시는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드리는 결혼 예배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결혼 예배가 되기를 소원한다는 한 청년의 청년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결혼을 준비 중이에요. 신앙이 없으신 남자친구 부모님은 교회에서 결혼하는 것을 반대해 오셨어요. 이 문제를 놓고 지체들에게 나누다 보니 결혼 비용을 줄이려는 마음과 지체들에게 인정받으려는 마음 때문에 교회에서 결혼 예배를 드리려고 했던 제 본심을 보게 되었어요. 공동체 지체들이 결혼 예배의 본질이 구원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덕분에 저는 비본질적인 것에서는 양보할 수 있었어요. 외부에서 결혼하기로 결정하고 나니 아버님이 이번에는 주례자를 목사님으로 세우는 것도 기도도 찬양도 모두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마음이 힘들어 목사님의 주례를 포기하고 싶던 순간 남자친구가 ‘우리 목사님 주례는 양보하지 말고 사수하자. 아버지 뵙고 담판 지을게.’라고 했어요. 저는 그동안 걱정만 하며 결혼 예배를 위해 제대로 기도한 적이 없던 모습을 회개하고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기도를 부탁했어요. 그런데 남자친구가 아버님을 설득하러 가기 전 아버님은 주례만 허용하겠다고 연락을 주셨어요. 남자친구는 ‘고집을 꺾으시는 거 처음 봐.’라며 신기해했죠. 여전히 큰 풍랑은 그대로이지만 25절과 26절처럼 ‘안심하라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고 말해주는 공동체가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의 적용은 ‘결혼 예배가 구원 잔치가 되기를 매일 기도하겠습니다. 예비 시댁과 갈등이 생길 때 남자친구에게 화부터 내지 않고 공동체에 묻겠습니다.’입니다."
37절에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고 해요. 처음에는 바울, 누가 그리고 아리스다고만 우리였지만 그 우리가 기도함으로 진정한 ‘우리 276명’의 열매가 생긴 것입니다. 그들은 죄수였지만 바울과 같이 배에 탄 구원 받은 사람으로 기록되어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묻고 기다리며 기도할 때 우리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명으로 함께 갈 우리를 하나님이 허락해 주십니다.
♱ 기도 드립니다.
주님, 광풍 앞에서 오랜 시간 먹지 못하는 것처럼 작은 사건 앞에서도 불안해하며 소망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살아가는 저희입니다. 이제 이 광풍의 사건 앞에서 주님의 말씀이 들리게 하옵소서. 이들은 말씀을 붙들 때 안심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광풍의 사건을 통과하며 안심하고 사명으로 나아가길 원하오니 반드시 한 섬에 걸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섬이 다가올 때 일희일비하지 않고 공동체에 묻고 기도하길 원합니다. 함께 먹고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안심하고 함께 먹을 때 내 곁의 지체들이 늘어나게 하옵시고 광풍을 만난 지체들이 함께 모여 떡을 떼고 서로 안부를 물으며 기도할 수 있는 교회가 곳곳에 세워지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