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6:1-7
1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2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3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4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5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6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7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 여기 서서 심문받는 까닭은 ♱
하나님 아버지, 이 땅에서 심문받는 것이 나그네의 삶을 잘 살기 위함임을 밝히며 성령의 약속을 붙들기를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성령의 약속을 붙들면 첫째, 어떤 상황에서도 손을 들어 기도할 수 있습니다.
1절에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라고 해요. 손을 드는 행위는 당시 연설가들의 특징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바울이 손을 든 것은 습관적인 제스처나 경의의 표현이 아니었어요. 여기에 쓰인 ‘들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거의 예수님께만 사용된 단어입니다. 바울이 위기의 순간, 괴롭힘이 반복되는 순간에 자신의 힘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그 능력을 의지한다는 기도의 표시입니다. 아무리 지적인 사람도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빠지면 감정이 앞서지요.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10분 뒤, 5분 뒤도 생각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반응하니까 사고를 치는 것이죠. 그런데 잃을 게 많은 사람은 그나마 잃을 게 아까워서라도 조금은 조심하는 게 있어요. 그럴진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은 성도라면 더욱 내일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으로 보장된 것이 너무 좋기에 이 땅에서 당하는 일로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상 위험으로 가득 찬 접견 장소에서 당황하거나 위축되지 않고 그 짧은 순간에도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들 수 있었어요.
우리도 어떤 일을 당할 때 전자동적으로 나오는 감정에 휩싸여서 반응하는 것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거기서 손을 들고 나와야 해요. 주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손을 들어 기도하는 것이 성령의 약속을 받은 사람의 증표입니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날 상황을 그날의 말씀으로 비추어 해석해야 해요. 그 묵상 자체가 주님께 손을 높이 드는 것이고 말씀대로 기도하는 것이 모든 적용의 시작입니다. 그 기도를 주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거예요. 적용 질문입니다.
♱ 분노조절 장애, 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 등 각종 병명 뒤에 숨어서 거기에 묶인 채 감정의 노예로 살고 있진 않나요? 거기서 손 들고 나와 큐티하고 나누며 치료받기로 결단하시겠습니까?
성령의 약속을 붙들면 둘째, 어떤 일도 다행히 여길 수 있습니다.
2절에서 바울은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라고 해요. 아그립바 왕을 향한 바울의 첫마디가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긴다는 고백입니다. 여기서 쓰인 ‘다행’이라는 단어는 ‘복되다’라는 뜻이 있어요. 즉 바울은 지금 자신을 복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는 거예요. 지겹게 반복되는 심문과 조사의 자리에 다시 선 바울은 어떻게 자신을 복 있는 사람이라고 여길 수 있었을까요? 마태복음 5장 10절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는 말씀을 기억했기 때문이에요. 괴롭힘이 반복되는 이 땅에서 우리가 끝까지 사명을 감당할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주님 때문에 박해받는 자에게 천국을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지요. 약속을 받은 인생 자체가 복된 인생임을 안다면 무슨 일을 만나도 다행히 여길 수 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불행한 일인데 성령의 약속을 받은 성도의 관점에서는 그 또한 복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축복이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바울은 어떤 상황과 환경도 모두 복음을 전할 전도의 기회로 삼았어요. 그가 이번 아그립바 왕 앞에서 하는 변론이 다섯 번째인데 가장 길고 상세하며 논리적입니다. 바울은 로마 황제에게 이미 상소한 상태였지만 아그립바가 변론의 기회를 줄 때 거절하지 않았어요. 아그립바 왕에게 무례하지 않으면서 배타적이지도 않고 친절하게 자신의 지나온 행적과 신앙을 고백했어요. 또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지도급 인사가 다 모인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했지요. 지금까지는 산과 바다를 넘나들며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매진했는데 복음은 그들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잖아요. 부자들이라도 구원받아야 할 불쌍한 영혼임을 알았기에 다시는 없을 이 기회를 이용해서 복음을 전한 것이죠. 바울은 성령의 위엄과 약속을 받았기에 이렇게 담대히 전할 수 있었어요. 자신이 복 있는 사람임을 알면 부담스러운 일도 다행한 일로 여기면서 종국에는 전도의 사명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지막 종착지는 우리 가족의 안녕이 아닙니다. 가족의 안녕도 결국은 전도의 사명을 위해서인 거예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 이 지겹고 무서운 환경에서도 내가 복 있는 사람임을 고백하나요? 그래서 어떤 만남과 환경도 복음을 전할 기회로 삼고 있습니까?
부모님의 편애로 상처받은 동생을 판단하며 무심하게 대한 죄를 회개하고 다시 동생에게 복음을 전하길 원한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사도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구원을 위해 변명했듯 제가 바울처럼 구원을 위해 변명해야 할 대상은 한 살 아래 남동생이에요. 저희 형제는 어려서부터 대학생 때까지 같은 교회를 다니며 함께 신앙 생활을 했어요. 학창 시절에는 동생이 저보다 교회를 더 열심히 다녔지만 동생은 교회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결혼하면서 공동체를 떠났어요. 생각해 보면 동생은 어릴 적에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해서 부모님께 성적이 좋은 저와 자주 비교 당했어요. 그때 저는 '공부 잘하고 모범적인 내가 동생보다 사랑받는 게 당연해'라고 여기며 편애로 상처받은 동생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죠. 나이가 들어서 동생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비도덕적이라며 교회 다니는 사람이 더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요. 이렇게 지난 날을 돌아보니 동생은 나름대로 자기 마음을 표현한 것인데 저는 성격이 이상하고 나와 맞지 않는다며 동생을 판단하기만 했어요. ‘때가 되면 언젠가 다시 교회에 오겠지’하는 무관심을 회개하고 이제는 동생이 구원받도록 애통한 마음으로 기도하기를 원해요. 거절당하더라도 저의 체면을 내려놓고 다시 용기 내어 예배 참석을 권할게요. 1절과 2절의 바울처럼 복음을 위해 지혜롭게 변명할 수 있도록 성령님이 도와주시길 간절히 기도해요. 저의 적용은 ‘동생 가족을 친근히 대하며 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 동생 가족이 구원받도록 매일 큐티한 뒤 1분간 기도하겠습니다.’입니다.”
4절부터 바울은 자신이 최고 율법 교사인 가말리엘에게 배우고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유대인 중 유대인인데 왜 몇 년을 이렇게 감옥에서 피고로 살고 있는지 왜 황제에게 상소하고도 재차 심문을 받는 자리에 서 있는지 스스로 답하고 있어요. 바울은 성령의 약속이 나사렛 예수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믿지만 바울을 고소한 유대 지도자들은 나사렛 예수를 믿지 않았지요. 그들은 단지 정치적 메시아를 소망했어요. 잘먹고 잘사는 기복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러니 죽었다가 살아난 예수님을 믿지 못해요. 그래서 성령의 약속은 기복의 약속이 아니라 팔복의 약속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을 전하는 증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증인의 의미는 순교자이기도 해요. 예수님을 전하려면 순교자가 될 각오를 해야 합니다. 넓고 편한 길 가라는 것이 아니라 좁고 험한 길 가라는 뜻입니다. 기복이 아닌 팔복을 따르는 삶은 본성을 거스르는 삶이지만 이것이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일이에요. 그러므로 성령의 약속을 받고 죽음이 아닌 생명으로 멸망이 아닌 구원으로 향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 기도합니다.
주님, 오늘도 이 땅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려는 저희에게 성령의 약속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바울이 반복되는 괴로운 상황에서도 손을 들어 기도했듯이 저희도 어떤 위기와 고난의 순간에도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손을 들고 기도하길 원합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은 성도답게 세상의 염려에 매여 반응하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며 말씀으로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의 모든 만남과 환경을 복음 전할 기회로 삼길 원합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그들의 눈높이에 맞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주님, 분노조절장애나 우울증 등 각종 병명 뒤에 숨어서 감정의 노예로 살지 않게 지켜 주시고 어떤 경우에도 성령의 약속을 붙들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내가 선 자리에서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증인이 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